둘째 날의 계획은 한 여름에
그것도 아주 더운 안동에서 가장 해가 뜨거운 시간에
그늘 하나 없는 하회마을에 가는 것이었다.
행복한 게스트하우스는 아침 식사로
게스트하우스 이모가 직접 만든 호박죽과 안동사과를 주셨다. 부담 없이 넘어가는 아침을 먹으며 우리의 계획을 들으신 이모가 병산서원을 적극 추천해주셨다.
병산서원을 먼저 들렸다가 하회마을을 가기로 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안동여행의 모든 목적지는
안동역 쪽의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했다.
허브 버스정류장이라고나 할까(이 표현이 맞나 모르겠다). 병산서원은 병산서원을 경유하는 하회마을행 버스를 타고 가면 되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의 목적지는 하회마을로
중간에 내려 병산서원을 들리는 경우가 적다고 한다.
버스 시간만 잘 맞추면
여유있게 두 군데를 다 둘러볼 수 있었다.


"병산서원은 고려 중기부터 안동 풍산에 있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風岳書堂)에서 비롯되었다.
지방 유림의 자제들이 모여 공부하던 곳으로 ,
고려 말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왕의 행차가 풍산을 지날 무렵,
풍악서당의 유생들이 난리 중에서도
학문에 열중하는 것을 보고 왕이 크게 감동하여
많은 서책과 사패지(賜牌地)를 주어
유생들을 더욱 학문에 열중하도록 격려하였다.
200년이 지나면서 서당 가까이에
가호가 많이 들어서고 길이 생기며,
차츰 시끄러워지면서
유림들이 모여 서당을 옮길 곳을 물색하는 중에
서애 류성룡 선생께서 부친상을 당하시고 하회에 와 계실 때 그 일을 선생에게 문의하니,
서애 선생께서 병산이 가장 적당할 것이라고 권하게 되었고
유림들은 선생의 뜻에 따라
1575년(선조8) 서당을 병산으로 옮기고
'병산서원'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
1614년(광해 6)에 우복 정경세, 창석 이준, 동리 김윤안,
정봉 안담수 등 문인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존덕사를 창건하여 선생의 위판을 봉안 하였다.
선생의 위판은 1620년(광해12)합향하는 과정에서
여강서원(주향 퇴계 이황)으로 옮겼다가
1629년(인조7)에 다시 병산에 복향하였다.
당시 서애 선생의 위판을
여강서원과 병산서원에 봉안하는 문제를 두고
"일읍양원병향(一邑兩院竝享)"과
"일읍봉안(一邑奉安)"등 의견이 있었으나
주자의 예에 따라 한 고을 두 서원에 병향해도 무방하다 하여 두 서원에 병향하게 되었다.
1662년(현종3)에 선생의 셋째아들인
수암 류진(柳袗, 1582-1635)공의 위패를 종향하였다.
병산서원은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고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1868(고종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중 하나이다. (書院27개, 祠20개)
1978년 3월 31일 사적 제 26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애 선생의 문집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 1,000여 종 3,000여 책이 소장되어 있다."
(소개 출처_ 병산서원 홈페이지)
옛날이었다면 과거시험이라고나 할까.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나라의 녹을 받자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옛 선조들의 기를 받아오겠다며
버스에서 내려 병산서원 안으로 들어갔다.
글을 보다가 고개를 들면 멋진 경관이 펼쳐지고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병산서원을 둘러보고
눈 앞에 펼쳐진 경관을 한참 바라보던 우리는
버스시간에 맞춰 하회마을로 향했다.
문화시민인 나는 누군가가 버리고 간 빈 물병을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는 메너까지 보이며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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